ⓒ이지영 그림



김가현의 〈주술 왕국〉(갈무리, 2025)은 역사적 병치라는 방법을 통해 무속에 깊이 빠져 패망을 자초했던 조선시대의 왕 세 명과 윤석열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자신과 국가를 망치게 되는 무속 정치의 일반 법칙을 공표한다. 첫 사례로 나오는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거치면서 대간(언로)의 입을 막고 공포정치를 펼쳤다. 그는 궐내로 무당과 박수를 불러 어머니 폐비 윤씨의 원혼을 달래는 굿판을 벌였을 뿐 아니라 무복을 입고 무당 노릇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중종반정을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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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초현실적 힘에 의지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사람이 아닌 왕이 그런다면 파급력이 다르다. 임진왜란으로 왕권이 실추된 선조는 전란의 책임을 한양과 궁궐의 풍수지리 탓으로 돌렸다. 재난의 근본 원인을 외면하고 초자연적인 요소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던 현실도피적 태도는 황금성사이트 뒤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에게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미신에 집착했던 그는 한양의?기운이 다했다는 풍수가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교하(현재의 경기도 파주시 일대)로 천도를 계획했다. 신하들에 의해 천도가 좌절되자 광해군은 왕기가 서린 땅을 찾아 한양에 무수한 궁궐을 새로 지었다. 그는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총애하던 무당 복동(福同)을 찾았으나 인 바다이야기사이트 조반정을 막지 못했다.


한때 국사학계에서는 고종을 놓고 자주적 근대국가를 수립하려 한 개명군주라는 해석과 성리학적 이상을 지키려는 도학군주라는 해석이 대립했다. 김가현은 어느 편을 드는 대신, 고종과 민비가 무속에 깊이 의존했던 사실을 제시한다. 민비가 남긴 편지 146통 대부분은 그녀가 인사 문 릴짱 제와 매관매직 등 국정 전반에 관여했던 내용이다. 단순한 조언이나 의견 개진을 넘어 정무의 중심에 있었던 그녀는 무당 진령군(眞靈君)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랐고, 외척이 권력 기반이던 고종은 민비의 말에 크게 의지했다.


한반도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된 중요한 시기에 고종과 민비는 왕실의 안위와 한국릴게임 왕권 유지를 위해 번번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조선 왕실의 요청으로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군은 용산에 눌러앉아 내정에 개입했다. 1884년, 여기에 반발한 급진 개화파가 일본 공사관의 지원을 받아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 난의 처리 과정에서 청과 톈진조약을 맺은 일본은 청과 동등하게 조선에 파병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1894년 갑오농민항쟁(동학혁명)이 일어나자 고종은 다시 한번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였고, 일본은 톈진조약을 앞세워 인천에 일본군을 상륙시켰다.


지은이는 고종이 위기 때마다 청나라 군사를 부른 데에는 합리적 판단보다 주술적 사고가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1887년 고종은 명륜동에 관우를 기리는 북묘(北廟)를 새로 건립하면서 북묘묘정비(北廟廟庭碑)에 새길 글을 지었다. 그 비문에는 북묘를 건립하게 된 계기가 나와 있다. 임오군란 때 궁궐을 가까스로 탈출한 민비는 민가를 옮겨 다니며 피신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왕과 왕비가 똑같은 꿈을 꾸었다. 꿈에 관우가 나타나 구원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명나라의 도움으로 임진왜란을 극복하게 된 조선 왕실은 명나라?군신(軍神) 관우를 신령한 힘을 가진 ‘구국의 신’으로 떠받들었다. 최초의 관우 사당인 동묘(東廟)가 종로에 지어진 것은 1601년인데, 고종은 진령군이 살고 있는 명륜동에 진령군의 몸주신(무당에게 강령한 신)을 위해 사당을 새로 세운 것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뒷문에 서 있는 북묘묘정비는 무속적 세계관이 조선 왕실의 국정 운영과 결합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위기 때마다 반복된 외세 의존은 새로운 외세 개입을 불러왔고, 종속의 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자력 수습의 실패가 외세 요청으로, 외세 요청이 다시 심화된 종속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개항기 조선의 몰락을 재촉한 구조였다.” 고종과 민비가 끌어들인 청군이 용산에 주둔하게 된 것은, 이후 140여 년간 이어질 외국 주둔의 시작이었다.

문제의 그 손바닥, 들킨 게 아니다

〈주술 왕국〉은 세계의 정치학계 어디에서도 발표된 적이 없는 ‘주술 의존형 권력 붕괴 모델’을 제시한다. 연산군·광해군·고종에게서 찾아내고 윤석열에게 적용된 이 모델은 네 가지 상호 연관된 단계로 구성된다. ①정통성이 취약하거나 통치 역량이 부재한 권력자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존재 이유와 결정의 정당성을 외부에서 찾는다. ②권력자는 자신을 향한 비판을 도전으로 규정하고 이성적 조언을





제공하는 공적 제도를 불신한다. 이로써 객관적 현실 능력을 잃는다. ③비어버린 권력의 심층부로 주술·비선(秘線)·음모론과 같은 몰이성적 대안이 파고든다. ④비합리적 도구에 대한 의존이 깊어질수록 권력은 현실과 괴리되고, 주술적 믿음에 더욱 의지하게 된다. 그 끝은 파국이다.


지은이는 이 책 199쪽에서 손바닥에 쓴 ‘왕(王)' 자를 윤석열이 부주의하게 카메라에 “들켰다”라고 썼지만, 2021년 10월1일 제5차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때에 찍힌 문제의 사진을 보면 들킨 게 아니다. 윤석열은 그 글자를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대중에게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처럼 노골적으로 왕 자가 쓰인 손바닥을 카메라를 향해 펴 보였다. 약사의 약방문과 무당의 주술에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을 하라’거나 ‘~은 금해야 한다’는 주의가 따라붙는다. 윤석열은 천공이나 건진법사, 아니면 손바닥에 왕 자를 써준 또 다른 술사로부터 방송 도중에 손바닥을 펴 보여 “내가 왕이다”라는 것을 선언해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주문을 받았다. 윤석열이 무속을 ‘밑져봐야 본전’ 정도로 여겼다면 감점 요인이 될 저런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종교는 무속이다.


윤석열은 무속을 떠나서도 초현실적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 과정 자체가 그렇다. 조국 사태 때 “저러다가 윤석열이 대통령선거에 나오는 것 아니냐”라는 농담이 처음으로 흘러나왔다. 그는 농담처럼 대통령이 된 데다가, 그 자신이 모순덩어리였다. 윤석열은 조국 일가의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를 수사하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배우자인 김건희의 논문 표절과 경력 위조는 물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만만치 않았다. 이처럼 초자연적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뒤늦게 합리적이고 공적인 사고를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농담처럼 대통령이 되었듯이 그는 계엄령도 농담처럼 성공할 줄 알았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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