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충북 영동군 황간면 안화리의 한 콩밭. 농민 이모(74)씨가 회색빛으로 변한 콩 줄기를 예초기로 베어내고 있었다. 이씨가 심은 콩은 ‘대원콩’ 품종으로 9월 말~10월 초에 수확한다. 콩이 익으면 꼬투리가 노란빛을 띠지만 오랜 비 때문에 썩어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씨는 “알이 영글만하면 비가 오고, 수확기에도 비가 와서 제때 베지 못하다 보니 대부분 썩어버렸다”며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수확했어야 했는데 추석까지 비가 와서 콩 농사를 망쳐버렸다”고 말했다. 자동종목검색기 이씨가 콩 꼬투리를 열자 작고 주름진 콩이 보였다. 이씨는 “원래는 지금보다 알이 굵고, 진노랑색이 돼야 정상”이라며 “1980㎡(600평) 크기의 콩밭 대부분이 썩은 상황이어서 예초기로 베어낸 뒤 쓸만한 게 있는지 찾아봐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난 29일 오후 충주식관리 북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콩밭에서 주민 이모(74)씨가 가을장마 때문에 수확기를 놓친 콩을 베어내고 있다. 최종권 기자
인근 지역의 농민 안모(66)씨는 4950㎡(1500평)의 밭에서 키운 샤인머스켓을 폐기 처분할 처지에 놓였다. 올해 계속된 비 때문에 당도가 예년에 비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알라딘사이트 . 안씨는 “통상 17~18브릭스(Brix)가 나와야 팔 수 있는데 대부분이 13~14브릭스 수준”이라며 “열흘 정도 더 지켜본 뒤에 폐기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례적인 가을장마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연일 계속된 비 때문에 벼는 물론이고 과일·채소까지 병해를 입거나 수확기를 놓치는 바람에 농민들이 해외선물 밭을 갈아엎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수확철을 맞은 전국의 논 3만6320㏊에서 가을장마의 여파로 ‘벼 깨씨무늬병’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벼 깨씨무늬병은 잎에 깨씨 모양의 암갈색 반점이 형성돼 벼 품질을 떨어뜨린다. 벼가 여무는 시기인 등숙기(登熟期)까지 고온 현상이 이어질 경우 논에 심어진 벼 뿌리가 썩게 된다.야마토릴
벼 깨씨무늬병은 올해 전남에서만 고흥군 2000㏊, 해남군 1760㏊ 등 1만3336㏊ 논에서 발생했다. 앞서 지난 7일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창리 일원을 방문해 벼 깨씨무늬병 피해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지난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과역면 한 벼 재배지에서 ‘벼 깨씨무늬병’이 발병해 논 색깔이 회색으로 변했다. 황희규 기자
경남 지역에서도 전체 벼 수확면적(6만231㏊)의 8.2%(4935㏊)에 달하는 논에서 벼 깨씨무늬병이 발생했다. 일부 농가에선 장마 때문에 수확이 지연되면서 낟알에 싹이 트는 ‘수발아(穗發芽)’ 피해까지 겹쳐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수발아는 계속된 비로 인해 수확기 전에 발아하는 현상으로, 벼 품질을 떨어뜨린다. 수발아로 생긴 싹이 비가 그친 뒤 햇볕을 받으면 까맣게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경남에서 10월 초까지 파악된 수발아 피해 면적은 639㏊에 달한다. 배추 최대 산지인 전남 해남군에서는 김장철을 앞두고 무름병 피해가 확산해 농가들이 시름에 잠겼다. 무름병은 배추를 물러 썩게 하는 세균성 병해로 지난해에 이어 2년째 발병했다. 지난해에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확산하더니 올해는 해남을 비롯해 호남, 충청 지역까지 피해가 커지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거문리 고랭지 배추밭. 일부 농가들이 무름병 확산 등으로 수확을 포기한 모습. 박진호 기자
강원도 배추밭 곳곳에서도 무름병과 노균병이 발병해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고 나섰다. 특히 평창군 진부면 일대에선 무름병이 창궐해 배추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농민 양삼용(69·평창군)씨는 “99000㎡(약 3000평) 크기의 배추밭에서 무름병이 발병해 지난 28일부터 배추밭을 갈아엎고 있다”며 “2만 포기에 달하는 배추농사가 완전히 망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6월 중순에 심은 배추는 추석 이전에 출하했는데 8월에 심은 가을배추는 무름병이 확산하면서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며 “앞으로도 올해처럼 이상 기후 발생 빈도가 높아질 것 같아 걱정이 많다”고 했다 삼척시에서도 가을장마 때문에 농가 곳곳에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벼 생육이 부진한 데다 벼가 쓰러지는 도복 피해(23.6㏊)와 수발아(25㏊), 벼 깨씨무늬병(40㏊) 등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29일 오후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콩밭에서 주민 이모(74)씨가 가을장마 때문에 수확기를 놓친 콩을 베어내고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지역에서는 영동군·괴산군 등을 중심으로 콩과 가을배추 등이 가을장마 피해를 입었다. 사과 재배지인 충주에서는 열과(열매 터짐)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오랜 기간 비가 내리면서 농가들이 ‘벼 깨시무늬병’, ‘배추 무름병’, ‘콩 미라병’ 등으로 인한 피해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며 “아직까지 신고를 하지 않은 농가를 감안하면 피해 면적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장마 피해를 본 농민들은 농작물재해보험의 적용 확대 등 정부의 지원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상기후 탓에 생긴 농작물 피해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김효수 전국배추생산자협회장은 “배추 무름병 등은 명백한 기상이변 피해인데도 농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면 농민들은 손실을 보전받을 길이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즉각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에는 배추 공급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곤 경남도 농정국장은 “이상기후로 인한 농작물 병해충 확산으로 농가 피해와 함께 농작물 가격 급등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배추 무름병 등의 농식품부 재해 인정 건의와 함께 벼 깨씨무늬병 등에 대한 재난지원금도 예비비를 편성해 농민들의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해남·영동·평창·창원·고흥=최경호·최종권·박진호·안대훈·황희규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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